전시제목 : 이서현 개인전 | 시간의 꽃

전시일정 : 2021.5.21-5.30 (전시기간 내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 팔레드서울 1층






1. 전시소개

자기 기원과 기억에 가닿으려는 이미지

작은 바늘꽂이 하나가 적조하게 놓여있다. 그것만이 고요하게 차분하게 바닥에 엎드려있다. 흰 바탕을 배경으로 온전히 제 모습을 죄다 드러낸 바늘꽂이는 아담하고 그래서 앙증맞다. 위에서 내려다 본 시선에 순순히 응한 이 순한 사물은 자기 존재감을 거의 무방비로 드러내고 있다. 어머니의 바늘꽂이와 함께 작가가 직접 수집한 다양한 바늘꽂이들은 저마다 다른 제 사연을 각각의 형태나 색상 마냥 다양하게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의 이력이나 삶의 굴곡 또한 스스로 공들여 아름답게 짓고 있다는 생각이다. 소소한 사물이고 흔한 도구이자 값싼 물건일지 모르지만 그 누구에게는 추억이 깃든 소중한 매개이고 절절한 사연과 측량할 수 없는 시간의 깊이와 무게가 내려앉은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사물이 그렇게 일상의 도구성에서 이탈될 때 사물은 자신의 또 다른 존재감을 환하게 드러낸다. 사물의 본질이 쓰임새에 의해 주어지지만 반드시 그러한 도구성, 실용적 차원에만 저당 잡혀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사물은 그것을 사용한, 다룬 특정 인간의 삶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어서 그 사물은 동시에 그 누군가를 대신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물은 특정인, 시간, 기억, 추억 등과 동일한 존재가 되어 출현한다.

이서현은 어머니와 지금은 수몰된 고향에 대한 기억의 매개로 바늘꽂이를 선택했다. 바늘꽂이는 어머니의 고단한 일상과 반복되는 노동과 동시에 한 가족사 안에서 세습되는 여자의 삶 등을 복합적으로 암시하는 고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실타래가 되어 자신에게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바늘꽂이는 할머니, 어머니의 생애와 나, 그리고 딸 등으로 이어지는 생의 순환 고리를 그려 보인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의 바늘꽂이를 비롯해 여러 바늘꽂이를 모으게 되었다고 한다. 이 수집의 행위에는 자기 기원과 기억에 가닿으려는, 소멸되는 시간에 저항하려는 시도가 있어 보인다. 사물을 수집해 기록하는 사진 행위는 여기서 그 가치를 부여받는다. 사실 특정 사물에 인간이 부여하는 여러 의미는, 불가피하게 진부하고 상식적이긴 하다. 좋은 사진은 그런 관습적인 의미의 덫에 단단하게 결박된 사물을 풀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이서현의 바늘꽂이를 촬영한 사진 중 바늘꽂이 자체를 매혹적으로,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찍은 어떤 바늘꽂이 사진이 좋지 기억, 어머니 등의 여러 수사가 붙었기 때문에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풍성한 볼륨과 여러 형태를 지닌, 다양한 질감과 색채를 지닌 바늘꽂이의 다채로운 조형미와 이를 간결하고 절제된 미감으로 적조하게, 다소 무심하게 찍어 낸 것 자체도 충분히 좋은 사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바늘꽂이와 한 쌍을 이루는 것은 자화상 시리즈다. 반신상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작가의 초상은 눈을 감거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또는 촬영 현장(야외)에서 구한 꽃으로 머리에 장식을 했다. 흡사 천경자가 1970년대에 그린 여인시리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구성이다. 다소 수줍고 어색하고 그러면서도 맑은 얼굴이, 자신의 여러 페르소나의 겹들이 슬쩍 무너지면서 잊고 있었던 어느 시절의 얼굴이 느닷없이 해맑게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우연히 접한 바늘꽂이에서 엄마와 고향의 기억이 줄줄이 풀려나던, 마법과도 같은 그 기억의 시간이 도래하듯이, 어린시절놀이처럼 머리에 꽃을 꽂다보면 불현 듯 그 순간의 어느 얼굴이 밀고 올라오지나 않을지...

촬영 현장에서 수습한 소박한 들꽃들을 그대로 들고 있거나 대충 실로 묶어 머리카락 사이에 끼워 놓은 후에 촬영한 이 초상 사진 역시 바늘꽂이와 대등한 차원에서 있는 그대로, 그것 자체의 진실성을 최대한 억압하지 않으려는 배려 속에 자리 했다. 무성한 기억을 내장하고 있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려는 순간을 포착하려는 듯한 시간, 혹은 지난 시간을 회상하려는 얼굴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얼굴은 특정 시간의 얼굴인 동시에 까마득히 지난 시간과 그만큼 부식되고 남겨지고 떠오르고 사라지는 여러 흔적들일 수밖에 없는 기이한 얼굴들의 얼룩을 겨우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보이는 모든 것들은, 남겨진 모든 것들은 알 수 없는 것들이자 온전히 표명되기 무척 애매한 것들이다. 그럼, 사진으로 찍힌 이 대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온전한 지시물이기보다는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애매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라면 이는 차라리 이미지의 진실에 가깝다.


2. 작가노트

기억을 담으려고 했다.

기억은 제멋대로라 사진으로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기억은 내면의 거울이다“고 인식한 대로

판에 박힌 기억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기억에 칼자국을 낸다. 점점 사라져가는

과거의 어떤 경험을, 어떤 곳을 마음으로 보고 생각하고 새롭게 흡수한다.


1년 동안 전국 시장의 반짇고리를 찾아다녔다. 100개를 모았다. 그중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되어가는 색동 헝겊, 헝겊 조각으로 만든 색이 바래고 경계가 흐려지고 먼지가 쌓여 변주되고

아픈 손가락처럼 더 정감이 간 반짇고리를 골라 앞에 두고 오랫동안 보고 또 보면서 나는 기억을

모으듯 천천히 의미를 알아갔다. 오래된 시골 방과 댐이 되어 사라진 집의 희미한 기억 하나를 잡고

그 시간을 반짇고리가 품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나에게 닿는 방법 그래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는 방법를 반짇고리라는 오브제가 하고 있다.

미궁에서 아리아드네의 실을 길게 늘인 채 잡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 실에 이끌려 과거와 미래로의

끊을 수 없는 길을 만들고 있다.

이제까지 지나온 것도 시간이고 앞으로 가는 것도 시간이고 내가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3. 작가소개(약력)

이서현은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어느 한 날,

가정 안의 삶을 깨치고 사진을 통해 자아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였다.

현재는 삶 속에서 경험한 균열과 파편화된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고 경험적인 시간적 기억에 주목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미술학사 사진전공(학점은행제) 중이다.


2017년 공간291에서의 첫 개인전 <바람의 화원> 외에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저서로는 <울림산방가는길,동서문화사,2018>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