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순환 (Win-win―Cycle)

최성열

2021. 9. 8 수 – 9. 16 목



전시 내용

현재의 세계는 지나친 인간, 즉 이성 위주의 과학 기술 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편리해진 것 같지만, 자연 및 생태계는 “기술적 조작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생명이 위기를 감지하고서야 비로소 지구를 살리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늦어 버렸고 이 문제 역시 인간은 더 발달한 기술로 해결하려는 크나큰 우를 범하려고 한다. 이러한 자연 파괴에 따른 지구 멸망을 막는 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시점이 아닌 자연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 간의 문제를 해결함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 인간 간의 문제란 중세 이후의 군주와 백성의 주종관계, 군국주의,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타민족의 침탈 행위와 인종차별주의, 이념과 종교에 따른 타자성과 상명 하복관계, 남녀관계의 문제인 페미니즘, 산업화와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에 의해 비롯된 갑과 을의 관계 등등의 수직관계이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 및 냉대의 관계성이 인간과 인간이 상호 동등한 수평적 관계로 수정 발전했을 때 비로소 ‘자연과 인간의 대대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왜냐면 이러한 타자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자연을 타자로 계속 볼 것이고 이용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 간의 관계성 회복이 선행된 후에 비로소 인간도 자연의 한 구성원이라는 각성 후에 자연을 자연의 시각으로 동등하게 대하면 자연과 지구는 살아 날 것이며, 인간도 지구에 영주하게 될 것이다.


생성된 작품들은 유채성 물감으로 오방색의 수많은 점을 순서대로 뿌림과 말림을 반복하며, 최종 색으로 보이는 파랑, 혹은 빨간색을 더 많이 뿌려서 말린다. 그런데도 멀리서 보면 바탕색이 파란색, 혹은 빨간색 단색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색이 보인다. 이를 나는’ 생명 에너지라고 부른다.

이러한 바탕 위에 흰 단색의 물감을 엷은 층으로 바탕이 은근히 보이게 덮고 나서 그 물감을 닦아낸다. 그 후 표현은 다시 오방색을 뿌리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행위를 통해 바탕색과 흰색이 뒤섞이면서 점점 흰색의 농도가 진하게 표현된다. 이러한 뿌림과 쌓임, 그리로 서로 물감을 섞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래서 최대한 바탕의 주조 색은 파란색, 빨간색, 녹색 등이 보이게 유지하면서 폭포수가 표현된다. 이 방법은 점진적 반투명 흰색 쌓임의 방법으로 명암을. 물의 양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의 폭포수 명암법은 기존 서구의 명암법에서 벗어난 표현이다. 파란색, 녹색 바탕은 순수 자연계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빨간색 바탕은 사랑, 열정을 의미한다.


작가 노트

인류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각종 매체나 대학교에서 인간의 편리를 위한 AI 및 나노공학과 인간 생명 연장을 위한 생명공학 등이 핵심 10대 신기술이라고 거론된 바 있다. 결국 인간이 잘살기 위한 과학 기술의 발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 편리한 추구만이 과연 옳은 일일까?

1996년 이후 본인은 이념과 진영논리보다는 ‘죽어가는 지구’에 눈을 돌렸다. 즉, 과학 기술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편리함만 추구한 ‘지나친 인간 중심적‘인 서구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지구생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 이를 암각화로 표현(‘미래완료 시점에서 본 현재 진행형’의 암각화 및 화석들의 발굴된 모습) 한 바 있다. 이는 인간의 이기로 결국 핵폭발까지 진행되어 죽은 지구의 살아남은 후손들이 지구 패망의 문제를 지나친 과학 문명이었음을 그 흔적들(암각화, 화석 작품)로 증명한다는 작품들이었다.

이후 2000년부터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지구 생존의 문제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해야 하는데, 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 회복만이 유일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위한 화두인 “생태의 역설”(2000) 시리즈로 작업을 했었다. 그 이후 작품들은 “존재의 트임”, “트인 곳” 등의 부제를 달면서 존재들의 상생, 즉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 대한 문제를 입체 및 설치와 평면으로 발표해 왔다.

2004년 이후 ‘네거티브적 물’ 표현을 시작으로 2006년부터의 ‘물’ 표현 초기작품들은 화면을 상하 이등분하여 존재들의 평등에 대해 해석을 했다면, 2013년부터 물에 대한 해석을 ‘폭포수’로 확장하면서 이를 노자의 ‘도 Tao' 개념으로 부제를 추가하였고, 최근에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위한 해법’으로 ‘도道’의 최고 개념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주제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상생-순환(Win-winㅡCycle)”의 제목으로 작품들을 발표한다.

물은 유기적 흐름으로 자연의 온갖 존재들에 영향을 미친다. 그 모습 또한 다양한 존재들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모습의 속성을 지닌다. 또한 물은 대체로 은은하게, 때론 징벌의 수단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이러한 물의 본질을 작품 내면성으로 수용하여 물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고 동물의 모습이기도 하게 표현하였다. 이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인간 간의 관계성에 대한 문제의 해법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이번 “상생-순환(Win-winㅡCycle)” 작품들은 물의 속성 중에서 중력에 의해 수직 낙하하는 물의 모습과 다른 존재들의 영향에 의해 사방으로 퍼지는 모습으로 세계 모든 존재들에게 고루 혜택을 주는 상생과 이것이 영원히 순환되는 내면을 표현하였다.

자연의 순환 현상으로 대지에 안착한 물은 대지에 고루 영향을 주면서 유유히 흘러간다. 작은 차이의 굴곡에서는 미끄러지듯 아래로 흘러 그곳을 채운다. 작은 틈의 공간도 예외 없이....... 다 채워진 물은 넘친 다음에 비로소 다른 곳으로 간다. 이러한 물의 행보는 세계에 고루 영향을 주면서 흘러간다. 그러다가 대지가 끊기고 아득하게 꺼진 낭떠러지를 만나면 지체 없이 행보를 바꾸어 낙하한다. 이렇게 낙하하는 과정에서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동물 같기도 하고 식물 같기도 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 작품들은 폭포수의 다양한 변신 중에서 스크린에 비친 산수화처럼 보이기도 한 모습으로 낙하 수를 표현하였고, 낙하 수 아래의 다른 존재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현상을 표현하였다. 물은 낙하 중에서 만난 다른 존재들에 의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다음 행보로 이어진다. 기체화되어 상승하기도 하고, 다시 완곡한 포물선을 그으면서 폭포 아래의 용연길에 합류한다. ‘용연’에 모인 물은 깊은 공연 바닥까지 휘감고 들어가서 재정비하여 비로소 표면으로 올라와 다시 다른 세계로 생명 에너지를 전해 주러 간다.

수직 낙하하는 폭포수를 강조하고, 스크린에 비친 산수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폭포수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표현을 위해 화지에는 뿌려지는 오방색 위에 파란색, 빨간색의 주색을 추가한 바탕이 생성된다. 이 결과 위에서 흰 단색이 섞이는 반복 행위를 통해서 자연스러운 폭포수로 표현되게 한다.

폭포수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이유는 “물은 편견 없이 세계에 고루 영향을 미친다. 폭포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 세계가 보임과 사라짐을 반복한다. 이는 바탕에 무작위로 깔린 물감과 그리는 물감이 상호 교감하면서 드러남과 사라짐이 반복하게 됨을 느끼면서 자연과 공감하게 된다.” 는 것이다.

즉 “폭포수” 시리즈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이 물아일체가 되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 2021. 8. 17 장항동 작업실에서